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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 시간을 품다. [ 작가노트 ] 내가 유년시절을 보낸 청산도에는 돌담이 많다. 돌담은 삶의 배경처럼 어디에나 있었지만 어디에나 있기 때문에 의식되지 않았다. 돌담은 내가 따라 걸을 수 있는 길이었고 호박이 열리는 풍요이며 연을 날릴 때 바람막이였다. 돌담은 그렇게 의식되지 않는 방식으로 체화되었다. 내가 처음으로 돌담을 의식적으로 의식한 계기, 즉 거리를 두고 돌담을 사진의 대상으로 의식한 계기는 돌담의 사라짐이다. 돌담은 만들어지고 풍화되면서 오랜 시간을 견디지만 가장 쉽고 빠르게 사라진다. 비와 바람에 노출된 돌담은 쉽게 허물어지지만 쌓기는 어렵다. 시멘트 블록담장에 비해 많은 노동력과 준비과정 그리고 기술이 요구된다. 가뜩이나 돌담은 가난의 상징으로 여겨져 빨리 사라져갔다. 사라지는 모든 것들이 애처롭지만 돌담만큼.. 2015. 4. 7.
조화 시시각각으로 생성되고 소멸되는 세상에서 과거 농경사회에서 자연적인 소재를 사용한 돌담과 현대 물질문명의 산물인 시멘트, 함석 재료가 같이 공존하는 삶의 일부로서 자연의 조화(造化)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경험할 수 있다. 돌담은 인간의 정서와 정신이 투영되어 있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돌담에는 부분과 전체가 조화를 이룬 비례와 기하학의 원리가 적용되며 이러한 원리의 이면에는 그것을 생각해낸 장인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 2015. 1. 5.
느림 느림이라는 것은 시간의 느림 말고도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다. 돌담 같은 경우는 적당한 어떤 여유로움이 존재한다. 돌담은 고향을 상징하는 미학적(美學的) 요소이다. 돌담은 고향을 상징하는 다른 요소들, 즉 당산나무와 앞개울, 초가집과 더불어 고향의 미학을 상징한다. 돌담이 줄기차게 얽혀서 이어지는 가운데 직선과 곡선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움, 그것은 돌담만이 가진 색깔이자 음색(音色)이다. 돌담 속에서 느림은 자연과 어울리는 까닭에 세상을 온전히 관망하게 하며 마음이 한가롭고 고요하고 한없이 평화스러움을 느낄 수 있어서 언제든 돌아와도 따뜻하게 맞아주는 고향과 같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2015. 1. 5.